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

#YesAllWomen

6년 전에 내가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라는 제목의 글을 쓰려고 앉았을 때, 나 스스로 놀란 점이 있었다. 웬 남자가 나를 가르치려 든 우스꽝스러운 사례로 글을 시작했건만 결국에는 강간과 살인에 관한 이야기로 글을 맺게 된 점이다. 우리는 폭력과 권력 남용이 성희롱, 협박, 위협, 구타, 강간, 살인 같은 범주들로 서로 깔끔하게 분류되는 것처럼 다루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이제 나는 그때 내가 무슨 말을 했던 것인지 이해하겠다. 나는 그것이 자칫 미끄러지기 쉬운 비탈이라는 사실을 이야기한 것이었다. 우리가 여성 혐오의 다양한 양태들을 구획하여 각각 별도로 다루기보다 그 비탈 전체를 이야기해야 하는 까닭은 바로 그것이다. 구획화란 큰 그림을 조각냄으로써 전체가 아니라 부분만 보게 하는 것이다.

어떤 남자가 당신에게는 발언할 권리가 없고 상황을 정의할 권리도 없다는 믿음에 의거해 행동한다고 하자. 그것은 저녁식사 자리에서나 학회에서 당신의 말을 자르는 행동일 수도 있다. 아니면 당신에게 입 다물라고 말하거나, 당신이 입을 열었을 때 위협하거나, 말을 꺼냈다고 해서 때리거나, 당신을 영영 침묵시키고자 아예 죽이는 것일 수도 있다. 그는 당신의 남편일 수도 있고, 당신의 아버지, 상사나 편집자, 모임이나 열차에서 만난 낯선 남자일 수도 있다. 혹은 딴 여자에게 화가 났는데 ‘여성’이란 워낙 좁은 범주라서 당신이 ‘그녀’를 대신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생판 처음 보는 남자일 수도 있다. 당신에게는 아무런 권리가 없다고 말하는 그런 남자들은 어디에나 있다.


판도라의 상자와 자원경찰

생각은 상자로 도로 들어가지 않을지라도, 여성을 제자리에 돌려놓으려고 애쓰는 막강한 힘들은 여전히 존재한다. 아니, 여성혐오자들이 보기에 여성이 속한 자리라고 말해야 옳을 것이다. 그것은 침묵과 무기력의 자리다.

지니들은 호리병으로 돌아가지 않을 테고, 동성애자들은 벽장으로 돌아가지 않을 테고, 여성들은 굴복하지 않을 것이다. 이것은 전쟁이다. 그리고 비록 우리가 조만간 이기지는 못하더라도, 우리가 지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는 어떤 전투에서는 이겼고, 어떤 전투는 지금 한창 치르고 있다. 어떤 여성들은 썩 잘해나가고 있고, 어떤 여성들은 괴로워하고 있다. 세상은 흥미진진한 방식으로, 가끔은 상서롭다고 봐도 좋을 만한 방식으로 지금도 변하고 있다.